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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가 없거나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 2019-08-29 22: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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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조인의 입장에서 보면 야인(outsider)에 가깝다.

법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삶의 경로가 비슷하지도 않았다.

뜻이 있어 사법시험에 도전 하였으나, 합격은 예상 밖이었다.

시험 합격전 내 주위에는 법조인 비슷한 사람조차 없었다.

사법연수원에서도 남의 잔치에 온 손님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적어도 배경에 있어서 나는 극소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롯이 일 자체에 몰두하며 진검승부와 정면돌파 하는 것을 당연히 여겨왔다.

전관예우라는 단어는 먼나라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여전히 나를 지원해 줄 그 어떤 배경도 인맥도 없다. 

굳이 자산이라면 나를 언제나 응원해 주는 동기 법조인, 사제관계로 만난 사법연수원 스승님들 뿐이다.

그런데 내 사건에 이들이 담당 판사나 검사가 되면 오히려 나는 담당변호사를 바꾼다.

이들에게 혹시나 부담을 주거나 오해를 유발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전관예우가 있고 그것이 재판에 영향을 준다면, 나같은 사람이 맡은 사건은 좋은 결과가 나오면 안된다.

확률상 소수에 속하는 내가 주류 법조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란 그 존재감에 비례한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맡았던 사건의 수가 적은 것도 아니고, 대형로펌과 이른바 스펙 좋은 변호사들도 상대해 왔다.

그 많은 사건에서도 결과적으로 내 예상을 벗어나 부당하게 패소한 사건은 거의 없다.

패소가 부당하다고 생각한 사건도 전관예우의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방이 전관은 커녕 변호사 선임이 어려워 나홀로 소송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오히려 역차별을 느낄 정도로 법원이 약자에게 기울어진 경우가 내겐 더 심각한 문제였다.

 

법률업무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또한 사람의 노력과 상호견제를 통해 합리적 결과로 가는 길이 막혀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그 과정이 고되긴 하지만, 부당함을 해소할 수 있는 여러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전관예우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복합적 요인에 대한 관심이 내 고단함과 노력을 헛되지 않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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